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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별 쌀 값 동향 (2013~2018)

농지오케이윤세영 2024. 6. 16. 12:48

연도별 쌀 값 동향 (2013~2018)

 

 

1876년 개항과 동시에 쌀의 수출이 진행되면서 오르기 시작한 쌀값은 일제강점기 산미 증식 계획과 일본 쌀값 상승과 연동하여 더욱 가파르게 상승하였다. 특히 일제강점기 일반 물가 상승보다 쌀값 상승률이 더 높았다. 

 

1937년 조선 총독부 농림국이 간행한 『조선 미곡 요람(朝鮮米穀要覽)』의 통계에 따르면 1910년 7월 쌀값과 물가를 기준으로 하여 1919년 물가가 2.8배 상승한 반면 쌀값은 4.4배 상승하였다. 실제로 쌀값의 상승이 일반 물가 상승을 주도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1920년대 산미 증식 계획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일반 물가와 쌀값의 상승률의 격차는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1910년 7월의 쌀값과 물가를 100이라고 할 때 1920년대 물가 지수(物價指數)는 250을 전후였다가 1931년에는 150으로 떨어졌다. 1911년 석당 5엔 60전이던 쌀값은 1920년 16엔 23전으로, 그리고 산미 증식 계획이 진행 중이던 1925년에는 19엔 26전으로 상승하였다. 이후 농업 공황의 영향으로 1930년에는 10엔 14전, 그리고 1931년에는 6엔 61전으로 급격히 하락하였다.1920년대 하반기 쌀값의 하락은 그동안 진행되어 오던 산미 증식 계획의 중지를 가져오는 요인이 되었던 한편 산미 증식 계획 동안 농업 투자 비용이 고스란히 농가 부채로 남게 되는 상황을 초래하였다. 조선 총독부는 일본의 쌀 수요에 부응하여 조선에서의 쌀을 증산하는 데에만 목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생산량 증가와 경기 변동에 따른 쌀값의 변동을 안정시키는 대책에 대해서는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1921년 미곡법(米穀法)을 시행하여 농산물 가격 안정 대책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쌀값이 하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농산물 가격 안정 대책을 시행하지 않은 채 일본으로 쌀의 유입을 제한하려고 하였다. 이는 쌀의 증산 정책이 농민의 소득 증대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일본에 대해 쌀의 공급을 증대한다는 식민지 정책의 일환이었음을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이었다.

 

1920년대 하반기 쌀값의 하락과 부채 부담의 증가로 농가에서는 부채를 상환하기 위하여 쌀을 팔아 현금을 확보하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다.쌀값의 하락으로 쌀 생산의 이윤이 축소된 반면 수리 조합 추진에 따른 부담은 증대하고 있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지주가 부담하는 수리 조합 비용이 지주 총수입의 30∼70%에 달할 정도로 높았다. 당시 조선 전체 149개 수리 조합 공사비 총액은 약 1억 1500만 원 정도였는데, 대출 등에 의해 동원된 자금은 1억 400만 원에 이르러 투자 자금의 90%가 부채에 의해 진행되었다. 수리 조합은 애초부터 부채에 의해 부실기업(不實企業) 상태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기채(起債) 부담은 조선 농민들이 떠안게 되었는데 수리 조합 구역 내 자작농은 15원, 소작농은 5원, 지주는 9원의 적자를 보았다. 심지어 경기도, 전라도, 함경도, 강원도에서는 수리 조합 시공으로 오히려 토지 가격이 하락하기도 하였다.쌀값의 하락과 부채 부담의 증가로 농가에서는 쌀을 판매하여 현금을 확보하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쌀을 화폐로 교환하여 부채를 상환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농가의 쌀 상품화율을 보면, 지주는 보유한 쌀의 97.4%, 자작농은 62.5%, 자·소작농은 71.7%, 소작농은 11.6% 이상을 판매하였다. 시장에 출하된 쌀 2,876만 석 가운데 지주가 판매한 쌀이 56.9%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 농가당 쌀의 취득량이 많은 자·소작농의 판매분이 27%였다. 반면 자작농의 판매분은 13.1%, 소작농의 판매분은 16.1%에 불과하였다. 총생산량에서 총판매량이 차지하는 비율은 1925년 49.9%에서 쌀값이 폭락한 1930년에는 63%, 1932년에는 66%로 크게 증가하였다.278) 이와 같이 전체 조선 농가의 쌀 상품화가 증가하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취득할 쌀의 양이 적었던 자작농과 소작농은 자가 소비 부분까지 판매하여 현금을 확보하려 하였고, 이로 인해 농가 경제는 더욱 악화되어 갔다.

[필자] 김윤희278) 정연태, 「1930년대 ‘조선 농지령’과 일제의 농촌 통제」, 『역사와 현실』 4, 한국역사연구회, 1990, 224∼264쪽.

 

1930년대의 쌀 가격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당시 쌀 1가마(80kg)의 가격이 13원이었다고 합니다. 현재 쌀값이 20kg에 대략 5만원이라고 가정할 때, 1930년대의 1원은 약 15,385원의 가치가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3원은 약 46,000원 정도의 가치가 되겠습니다. 다만, 금값이나 임금 등 다른 요인을 기준으로 비교하면 가치가 달라질 수 있으니, 이는 대략적인 추정치임을 유의해야 합니다.

 

또한, 제가 검색 도구를 사용하여 2024년 현재의 쌀 가격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쌀의 소매 가격 범위는 킬로그램당 약 4,503.80원에서 8,235.52원 사이입니다

1. 이를 바탕으로 과거와 현재의 쌀 가격을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1930년대의 쌀 가격과 현재 가격의 변화를 통해 시간에 따른 물가 상승과 화폐 가치 변동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쌀값은 시간이 흐를수록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1950년도에는 쌀 1가마(80kg) 가격이 24원17전이었으며, 1960년도에는 1,368원으로 상승했습니다1. 이는 당시 서울시 거주 봉급생활자 5인 기준 9만3천2백72환의 30%를 웃도는 수준

쌀 가격은 시간에 따라 변동하며,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쌀값 변화를 통해 물가 상승과 화폐 가치 변동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1970년대의 쌀 가격에 대한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1970년대 쌀 가격: 당시 쌀 한 가마니(80kg)의 가격은 5,784원이었습니다

1.현재 가치 환산: 이를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288,000원 정도가 됩니다

2.가격 변동: 1970년대 이후 쌀 가격은 지속적으로 변동해왔으며,

 

2000년대 들어와서는 쌀 소비 감소로 인해 상승률이 낮아졌습니다

1.이 정보는 웹 검색을 통해 얻은 결과를 바탕으로 합니다. 현재의 쌀 가격이나 물가 상승률에 대한 더 정확한 정보를 원하시면, 관련 기관의 최신 자료를 참고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자료(1월 기준)에 나타난 쌀값 추이를 보면,

▲ 1980년-4만7600여 원

▲ 1990년-9만5100여 원

▲ 2000년-16만5000여 원

▲ 2010년-13만여 원,

그리고 2015년 15만9000여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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