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오케이의 횡설수설

잘살게 된 지금에서 기성세대의 과거를 돌아보며

농지오케이윤세영 2008. 4. 1. 13:05
 

 

 

요즈음 취업으로 난리다

봉급이 적다고 난리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가 없어서 난리다

일부 직종에서는 봉급이 적은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자리가 아주 없는 것이 아니라

고급일자리 편한일자리가 없는 것은 아닐까...

봉급이 적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적다고 느끼는 것은 아닐까....

 

요즈음은 먹을것이 지천이다

좋은것들만을  골라 먹는다

 

사교육비가 높다고 난리다

사교육은 내아이가 혹여 다른 아이한테 뒤쳐질까 부모들이 안달하는것은 아닐까...

 

 

과거라 할것도 없는 

지금의 기성세대로 몰리는 50대 이상의 어른들의 젊은 시절로 잠시 돌아가 보자

그들에게 일자리가 있었는가

먹을것이 있었는가

배움의 길이 그리많이 열려 있었는가 

 

 

60년대 아니 7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흰쌀밥 먹는애들이 부러웠던 시절이 있었다

아니 보리밥이나 악식이라도 배불리 먹었으면 하는 시절이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군사혁명을 일으켰고

민주화를 짓밟았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헐벗고 굶주린 국민들에게 배고픔을 면하게 해준 지도자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60년대 녹색혁명을 부르짓으며

식량작물의 종자개량과 증산에 박차를 가했고

70년도에 아이알 667이라는 통일벼를 농가에 보급하기 시작했고

그 뒤 76년경 유신벼라는 다수확 벼품종을 보급하였다

 

한편으로는 가문에 약했던 농업기반을 개량하고자 수리시설인 보와 도수로를 시멘트로 만들고

관정과 집수정등을 만들면서 수리안전답으로 만들어 안정적인 식량생산기반을 만들었다 

 

드디어 녹색혁명을 추진한지 10여년후인 70년대말에는 쌀이 남아돌기 시작하였다 

수매한 쌀이 창고에 쌓여 썩어 간다 하였고

그동안 그리도 몸에 좋다는 혼분식 장려운동은 슬그머니 없어지고

그동안 밀가루로 하던 막걸리를 쌀로 만들게 하였다

386이후 세대들은 어린시절 그 부모들이나 형들이 겪었던 배고픔을 모르고 날뛰는 세대인지라 배고프면 라면을 먹지라는 우스개가 나오는 건 아닌지...

386이후의 세대들은 잘 모르는 일일 것이다

 

또 한편에서는 마을의 주거환경개선사업등을 위하여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하는 새마을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그동안  마을이나 농경지로 이어지는 길들은 한톨이라도 더 생산하기 위하여 사람이나 다닐수 있는 소로길들이 전부였었다

그러나 농기계가 다녀야 하고 운반을 위한 차가 다녀야 했기에

마을길도 넓히고 농로도 만들어야 했다

또한 농촌마을의 주거환경개선사업으로서 초가집을 걷어내고 기와나 스레트집으로 바꾸고 부억이나 변소도 개량을 하였으며

마을에는 안길 확장과 하수구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쾌적한 주거환경을 조성해 나갔다

 

개인 소유의 땅에다 길을 내자니 그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또한 개인 재산인 지붕을 개량하는데도 만만치 않은 저항들이 있었다

그러나 새마을운동이라는 거창한 구호 하나로 밀어부쳐서 지금의 농촌마을을 단 몇년만에 만들수 있었다

 

물론 이런한 과정에서 반민주적인 사례가 많았다

남의 논과 밭은 물론 산을 불도져로 삽으로 까부수고 마을진입로를 내고

마을 안길을 내고 농로를 냈다

아마도 지금이라면 꿈도 꿀수 없는 일들을 했다

 

이 과정에서 물론 산림녹화도 있었고

땔거리를 나무에서 연탄으로 바꾸는등 여러가 복합적인 측면도 잇었고

농토개량을 위하여 농가주택을 개량한것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동안 농가주택의 초가지붕에 볏짚을 사용하게 되어 농지는 황폐하였으나

지붕개량으로 그 볏짚등 부산물들이 다시 농토로 돌아가게 되자 농토는 비옥해 지기 시작했고 생산량은 자연스레 늘어나기 시작했던것이다

농토를 비옥하게 만들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 것이 지붕개량과도 연탄보급과도 연계되고

산림녹화와 관정개발등은 수리안전으로 식량생산에  기여하는 시스템이란 것을...

이러한 사실을 지금도 많은 분들은 모르고

그져 새마을 운동, 산림녹화, 식량증산운동등으로만 알고 있거나

좋은 벼 품종이 나와서 잘 되는줄로만 알고 있을것이다

 

그토록 소원하던 흰쌀밥을 배불리 먹게되니 민주화라는 말이 국민들에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소위 말하는 등따시고 배부르니 계집생각 난다는 말이 있다

언제부터 우리가 그리했는가 말이다

지금까지 우리역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 일이다

 

그렇다면 취직난인 산업화에는 어떠한가

70년대 초까지만하여도

어땠는가

공장에는 먹여주고 재워달라며 �아왔고

버스안내양이나 트럭 조수도 하지 못해서 안달이었고

음식점에는 하루에도 몇명씩 먹고 재워만 달라며 일자리를 �아 헤맸다

봉급이 얼마냐고 무슨 봉급타령인지...

요즈음 세상을 보면 참으로 좋은 세상이다

한번 배고픔을 알아 보아라

정말 없어서 못먹는 그 아픔을...

취직못한 그대들이여 아는가

 

지금은 직장의 복리후생이 어떻고 봉급이 어떻고 하면서 맞지 않아서 취직을 안하는 것이지 정말 일자리가 없어서 안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자기가 바라는 수준의 취직을 하려는 것이지

물론 살기가 좋아졌으니 과거와 같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소득이 올라가면서 모든것은 차츰차츰 변해가는 것이니까

 

그렇다면 배움은 어떤가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 못한 386이전의 세대가 잇었다

386이후세대는 대부분이 고급 교육을 받았다

이제는 사교육까지도 안받으면 안되는 세상이다

능력껏 변해가는 세상을 따라가는 것이지

이를 우리네의 힘으로 어찌 할 것인가

 

 

모든것을 정부에서 할수는 없다는것이다

어느 분이 이런 말을 합디다

여러분이 선진국이라고 아는 미국에서도 개척시대에는 보안관의 봉급이 없었고 이 목장 저술집 다니면 뜯어 먹고 살았단다

지금은 봉급으로 살고 부조리시에는 처벌을 받지만..

우리네도 과거 보다는 지금 많이 좋아졌다

지금도 동남아서는 경찰 봉급이 아예 없거나 거의 없다는 것이다

소위 뜯어 먹고 살라고 한단다

 

국민소득과 비례하여 세금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즉 1만불에는 10%정도, 2만불에는 20%정도, 4만불에는 40%정도의 세금을 내야 한다고...

그런데 우리들은 세금을 제대로 내려 하는가

어떻게든 내지 않으려는 것이 우리네인것을..

그러고는 정부에서 모든걸 다해 달라고 선진국과 같이해달라고 한다

내가 할일을 다하면서 그만큼만 요구하기로 하자

 

어쨋던 386이전의 세대들의 흘린 땀이 있었기에 오늘의 세상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들이 모두 부정을 했고 잘못 살았고 민주화를 모른다고 치부하지 말자

그때는 그럴수 밖에 없었던 것임을..

여러분이 오늘 좋은 취직자리, 좋은학교 �고 지낼수 있음도...

지금의 민주화가 이만큼 온것도...

민주화 투사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투정을 , 아니 호사를 누릴수 있도록

지그과 같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든 더많은 국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는 것을 기억해 주시고..

오늘의 말없이 맡은일을 하는 수많은 국민들이 있기에 떠다른 내일이 있을수 있다는 것도 명심하시기를...

 

모두 희망을 갖고

용기를 내어 내일을 열어 갑시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