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오케이의 횡설수설

현충일에 아법님에게 부치는 편지

농지오케이윤세영 2012. 6. 6. 11:10

아버님 전 상서

 

아버님이 돌아 가신지도 어언 21년이 넘었네요.

어려서 무척이나 고생을 하셨고

한창 젊은 나이에는 6.25 전쟁에 참여하시여 조국을 지켜내셨고

저희 6남매 키우시느라 그야말로 손발이 부르트고 허리가 굽어지셨는데....

그 주름지고 야윈 팔다리와 굽은 허리 한번도 제대로 주물러 드릴 기회도 안주시고

그 고단한 몸 한번 편히 쉬시지도 못하시고 이별을 고하시다니...

아버님 생각만 하여도 다른 어르신들만 보아도 가슴 한켠이 저려 옵니다.

이제 제가 아이들 키워 보고

보기만 해도 생각만해도 귀여운 손주까지 얻고 보니 더욱 부모님 생각이 납니다.

 

오늘은 아버님과 같은 젊은이들이 무수히 피를 흘린 분들을 기리는 현충일이예요.

아침 일찍이 일어나 조기를 달고 아버님을 생각해 보았어요.

방금전에 묵념을 알리는 싸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는데

과연 얼마나 그 소리에 묵념을 하거나 선열들의 그 희생 정신을 생각해 보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저 같은 아버님의 일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어릴적에 전쟁터에서의 그 처절한 이야기며 무용담을 듣고 자란 저도 잊혀져 가는데 말이예요.

엊그제는 다시 한번 저의 철없던 어린시절에 후회가 되었어요.

아버님이야 먹고 살기 바쁘니 챙기지도 못하셨겠지만

벽장에 있던 몇 개나 되는 한국과 미국에서 받은 훈장들이

철부지 제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에 불과해서 없어져 버렸다는 것에 말입니다.

아버님 같이 전쟁터에서 배고픈 시절 이 나라를 재건한 많은 분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풍요속에 자유롭게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고마움도 잊혀져 가는 것이 못내 아쉽고

그 옛날의 이야기로 또는 과거 독재시절로 매도하며 그 시절을 애써 인정하지 않으면서

저 잘났다고 어느날 마치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듯한 사람들이 활개를 치는 

안타까운 현실을 제대로 알리지도 못하고 왜곡되어 가는 것 같고 해서

그져 부끄럽고 죄송할 따름입니다.

 

오늘 아침 에미 생일이라 하얀 쌀밥에 미역국을 끓이고 생일상 차려주면서 ...

그 옛날 제가 어렸을 적에 할머님이 했다는 말이 갑자기 생각이 났어요.

하얀 쌀밥에 고깃국은 커녕 잡곡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던 그 시절을...

여북하면 할머님께서 "펀펀 노는 제자식은 쌀밥주고, 뼈빠지게 일하는 내 자식은 꽁보리밥 준다"며

어머님에게 무어라 하셨다던 어머님 말씀이 생각이 나는 건 왜 일까요.

새벽부터 밤중까지 화전을 일구시고 손발이 부르트도록 일하시여

맨손으로 살림나서 집짓고 논밭떼기 마련하시며

그래도 동네에서는 자녀들 더 가르치고 남부럽지 않게 잘사는 가정을 만드신 아버님이야 말로

이 세상 누구에게라도 귀감이 되실 존경스러운 분이시라고 생각하며 본받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도 첫 봉급타서 맨주먹으로 시작한지 이제 36년이 된 지금은

저도 지금은 제가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으면서 살아갈 만큼 재산도 모았고

제가 가진 재주를 주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었어요.

아버님 제 이야기 듣고 계시지요.

 

오늘은 마침 아버님이 그리도 아껴주시던 에미 생일날이네요.

아버님이 에미와 손주들에게 끔찍이 했던 것을 이제는 제가 하고 있어요.

지금껏 제가 살아 오면서 아버님이 결혼할때 제게 해준 말대로

남의 처자 되려다가 고생이야 어쩌지 못한다하더라도

마음 고생만은 시키지 말라던 말씀을 실천하며 살아 왔습니다.

그리고 아버님 말씀대로 현명하고 지혜로운 에미 덕에 잘 살고 있어요.

그 곳에서도 저희 사는 모습 지켜보며 행복을 지켜주고 계시겠지요.

언제나 아버님 바램에 어긋나지 않는 그런 자식이 되겠습니다.

또한 이세상 누구보다도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버님의 바램처럼

어디 어느 곳에서라도 당당하고 떳떳하며

살아가는 동안 꼭 필요한 그런 사람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제 아버님이 그리도 아끼시던

제 아들네 집으로 초대 받아서 가야 될 시간이예요

아버님이 살아 오신 그 삶에 누가 되지 않도록

저는 물론이고 제 자식들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손주 서진이의 재롱과 떼쓰는 모습도 보고 즐겁게 지내다 오겠습니다.

아 오늘은 시내와 결혼할 형빈이도 온다고 하네요.

이제는 제 직계 가족도 7명이나 되었네요.

 

이번 일요일에는 아버님 묘소에 다녀와야 겠어요.

직접 장만하신 내 땅에 묻히고 싶어서 영원히 자리 잡은 그곳에 말이예요.

아참 요즈음 아버님 묘소에 잔디가 제대로 자라지 않네요.

자식들의 효도를 시험 하시는 건 아닌것 같고

어머님과 혹시 부부싸움하시는 건 아니지요.

가정의 평화가 온 누리에 퍼진다면서요.

더 자주 찾고 편히 쉬시도록 더욱 더 잘 살게요.

 

현충일 아침에  불효자  세영 올림